도박장 드나들던 무능한 아버지.. 13년 만에 드러난 반전

이정희 입력 2019.06.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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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배우 사이토 타쿠미의 감독 데뷔작 <13년의 공백>

[오마이뉴스 이정희 기자]

영화 <평일 오후 3시의 연인> <우리 가족 라멘샵> 등의 주연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 배우  사이토 타쿠미가 '감독'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사이토 타쿠미의 첫 감독 작품인 <13년의 공백>이 오는 7월 4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이토 타쿠미는 <13년의 공백>으로 2017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대상을 비롯해 20회 상하이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3회 시드니 인디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도 인정받았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타카하시 잇세이는 2017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민왕> < Dr. 린타로 > 등에서도 주연으로 맡아 열연을 펼쳤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어느 가족> 속 유사 가족의 아빠 오사무 시바타 역할을 맡은 릴리 프랭키도 가세했다. 그는 <아름다운 별> <이중생활>에서 주연을 맡으며 입지를 넓혔다. 
 
영화의 시작은 우리가 어디선가 보거나 들었던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다. 마츠다 마사토(릴리 프랭키)는 가끔은 아들과 캐치볼도 해주는 평범한 아버지인 듯하지만, 사실 무능력한 가장이다. 학교에서 상을 받은 기쁜 날,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도박장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빚은 늘고, 돈을 갚으라며 사람들이 집에 찾아온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집에서 맘 편히 밥 한 끼 먹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아버지다. 

빚쟁이들의 조롱을 받던 어느 저녁 아버지는 담배를 사오겠다며 집을 나서고, 그 후 13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짐을 떠안은 어머니 마츠다 히로코(칸노 미스즈)는 밤낮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집을 비워야 했던 어머니의 빈자리는 남겨진 아이들끼리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게 코지(타카하시 잇세이)와 요시유키(사이토 타쿠미) 형제와 어머니는 13년의 세월을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세 모자 중 누구도 아버지를 찾고 싶어 하진 않았다.  
  
 13년의 공백
ⓒ 디오 시네마
 
아버지가 싫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 마츠다의 장례식장 모습을 통해 언뜻 블랙 코미디 느낌을 주면서 '반전'을 꾀한다. 특히 마츠다씨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온 방문객과 친지들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승려의 독경 등 장례식의 절차가 끝나고 시작된 조문객들은 조문사를 한다. 몇 명 되지 않는 조문객들은 각자가 어떤 사연으로 아버지 마츠다씨와 엮이게 되었는가를 알려준다.

'웃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블랙 코미디의 전형처럼, 도박장의 동료와 직원, 경마 친구, 오갈 데 없어 함께 살게 된 동거인, 병실 이웃 등의 목소리로 듣는 아버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때론 구차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다. 심지어 막무가내인 에피소드들이 일본 영화 특유의 코믹한 해프닝으로 이어지면서,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두 아들 코지와 요시유키의 표정 또한 점점 미묘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그 후에도 다르게 살진 않았다. 여전히 마작을 하고, 경마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조문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들 코지의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가족 대표로 답사를 하게 된 코지는 "아버지가 너무나 싫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며 울먹이고 만다. 

장례식은 그 자체로 영화의 좋은 소재다. '장례식' 자체가 영화가 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1996년),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축제>(1996) 등이 있다. 일본 영화의 고전으로 치는 아타미 주조 감독의 <장례식>(1984)도 빼놓을 수 없다. 장례식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각 나라와 지역의 풍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제 '이승'과 이별을 하는 통과 의례지만,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이별' 과정이기도 하다.

임권택 감독은 <축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를 통해 가족 간 얽힌 악연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같은 가족이라지만 처지가 달랐던 삼촌과 조카가 '할머니의 장례'라는 공간을 통해 해후한다. 영화는 장례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저마다 가슴에 담아뒀던 앙금을 풀어내게 한다. 결국 엔딩의 사진 한 장처럼 웃으며 '화해'하는 '해피엔딩'.

죽은 자가 펼쳐놓은 마당에서 산 자들이 자신의 묵은 해원을 풀어낸다는 점에서 <축제>와 <13년의 공백>은 비슷하다. 
 
 13년의 공백
ⓒ 디오 시네마
 
'그 사람'이 되어버린 '아버지'

가족을 고생시킨 아버지였고 13년 동안 가족을 버린 아버지였지만, 아들들이 죽어서야 돌아온 아버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제야 알게 된 '아버지의 삶' 때문이다. 아들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면서, 사실 그동안 아버지를 향해 자신들이 내뿜었던 미움이 사실은 '그리움'이었음을 인정한다. 

가족사, 개인사 속 많은 문제들은 아픔의 왜곡에서 시작된다. '고통'은 자신의 아픔을 똑바로 볼 수 없도록 만들고, 결국 이는 왜곡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두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상실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우스꽝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장례식은 비로소 아들들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인정한 두 아들은 '상실'로 점철된 자신들의 유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장례식에 차마 가지 못한 아내 역시 비로소 미움에 봉인해둔 남편을 바라볼 여유를 가진다. 

<13년의 공백>은 배우 사이토 타쿠미가 첫 감독 데뷔 작품으로 어떻게 각종 상을 거머쥐었는지 잘 알려주는 영화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13년의 공백
ⓒ 디오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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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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