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에 휩싸인 나폴리.. 마라도나가 추락한 '그날'

김형욱 2020. 1. 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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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디에고>

[오마이뉴스 김형욱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디에고> 포스터.
ⓒ 워터홀컴퍼니(주)
 
전설 또는 레전드라 일컬어졌던 스타 선수들의 인생 후반기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그는 선수로서는 조금 빠른 은퇴를 선언하고 30대 중반부터 감독 생활을 했는데, 빛을 보진 못한 케이스다. 아예 빛을 볼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일까, 지난 2017년부터 하위권 팀들을 도맡고 있다. 그는 어딜 가든, 어느 팀을 맡든, 여전히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 

2018년 당시 멕시코 2부 리그 도나도스 데 시날로아를 맡은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날로아의 마라도나>로 만들어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현역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극단의 단어들 '신'과 '악마', '영웅'과 '배신자' 등이 지금도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은 천재 3부작 중 마지막의 주인공으로 마라도나를 택했다. 그의 지난 두 작품은 <세나: F1의 신화>와 <에이미>이다. 그는 일찍 세상을 뜬 두 명의 천재 전설에 이어, 여전히 세상을 뒤흔드는 한 명의 천재를 조명했다. 

<디에고>는 지난 2008년 선보인 <축구의 신: 마라도나> 이후 10여 년만에 나온 마라도나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 역시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오로지 옛 영상 자료와 얼굴 없는 현 목소리로만 구성했다. 자료로만 스토리텔링을 한 것이다. 

'디에고'와 '마라도나'

다큐멘터리 <디에고>는 '디에고'로서의 마라도나와 '마라도나'로서의 디에고를 모두 보여주려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디에고는 빈민가 출신의 수줍음 많고 다정한 남자인 반면 마라도나는 최고의 축구 선수로 미디어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슈퍼스타이다.

마라도나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증명하듯 10대 중반에 충격적인 프로 데뷔로 아르헨티나를 뒤흔들었다. 10대 후반에는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서 원맨쇼로 나라를 우승시키고 본인은 최우수선수로 뽑혔는데, 약관 20세부터는 이미 남미의 왕이었다. 당연한 수순인듯 그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향했고, 당시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다. 

그는 팬들의 기대에 호응하듯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악질적인 태클을 당해 선수생활 자체가 끝장날 위기에 처한다. 몇 개월의 피나는 재활 후 돌아온 그는 여전한 퍼포먼스를 펼치지만 그를 향한 악질적 태클에 시달리며 고생한다. 결국 참지 못한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세리아 A는 당대 최고의 리그로 유벤투스, 인테르, AC 밀란 등 유럽을 호령하는 클럽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리그 우승 한 번 없는 하위권의 그렇고 그랬던 팀 나폴리였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그의 나폴리 시절

작품은 보여준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이라고 말이다. 그는 1984년 이적 후, 1986~87 시즌부터 믿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축구는 축구장 위의 11명과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 그리고 팬들이 함께 하는 거라고 하지만, 마라도나에겐 이것이 해당되지 않았다.

모든 관심과 기대가 그에게 쏠렸고, 그는 '무대' 위 퍼포먼스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나폴리는 1986~87 시즌 사상 최초로 1부 리그 우승을 일구고 다음 해와 다다음 해에는 준우승 그리고 1989~90 시즌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1988~89 시즌에는 유럽대항전인 UEFA컵을 따냈다. 

나폴리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말 그대로 '신'으로 추앙했다. 나폴리라는 축구클럽은 제처두고서라도, 나폴리란 도시 자체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천대받고 또 꺼려하던 곳이었다. 마라도나는 그런 곳에 입성한 뒤 축구 하나로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도시를 하나로 묶어 사회, 경제,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것이다. 

신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추락할 운명이라고 했던가. 마라도나에게도 추락의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높이 올랐던 만큼 추락의 강도와 속도도 매우 강하고 빨랐다. <디에고>는 그 순간을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준결승전이라고 전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절정기 마라도나의 당연한 원맨쇼에 힘입어 우승했다. 그리고 4년 뒤 열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다시 한 번 높이 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준결승전 상대가 하필 이탈리아에 장소는 나폴리였던 것. 

나폴리는 격정에 휩싸인다. 나폴리에서의 마라도나는 말 그대로 신, 하지만 이탈리아인에게 축구는 역시 말 그대로 신이기에 이탈리아 대표팀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과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이후 거짓말처럼 이탈리아 전역에서 마라도나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는 한순간 신에서 악마가 된다. 미디어, 사법당국, 세무당국 할 것 없이 그를 향해 집중 융단폭격을 날린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듯, 마라도나는 여성편력과 마약복용 등 수많은 스캔들을 갖고 있었다. 

흥미의 대상인 천재의 내면

마라도나는 한편으로 천진난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와 더불어 자유분방한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다. 굳이 미디어에서 그를 끌어내리고자 하지 않고라도 말이다. 다큐 <디에고>는 '마라도나'는 슈퍼스타의 압박감을 잘 받아낼 수 있었지만 '디에고'는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고 한다. 디에고로서는 모든 생각을 잊고 놀고(여자도) 마시며(마약도) 풀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도, 그만큼 올라갔으면 내려와도 괜찮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맞는 말인데,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의 삶만큼 극단의 굴곡을 지닌 삶도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고 뜯고 즐기는 존재이자 무조건적인 존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의 인생 굴곡을 봤을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빈민가 출신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악마이자 배신자로 추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라도나는 그만의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흔히 천재의 삶은 흥미의 대상으로 소비하며 외면만 보기 마련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천재가 갖는 흥미의 상(像)이 깨지기 때문이다. <디에고>는 과감히 천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고 철저히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성공했을까? 성공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당시 자료만으로 전했기로서니 객관적이었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괜찮은 스토리텔링까지 맛볼 수 있었다. 이 작품으로 비로소 마라도나 신화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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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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