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 되살린 엄마가 우리에게 던진 강렬한 질문

김준모 2020. 10. 2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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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김의석 감독의 <인간증명>

[김준모 기자]

 <인간증명> 스틸컷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김의석 감독은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죄 많은 소녀>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부산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들꽃영화상(2019)과 부일영화상(2019)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기분 좋은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인간증명>은 SF란 그릇에 김 감독이 전작에서도 보여줬던 죄의식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담아낸 영화다.

영화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에는 AI와 기계인간(로봇)이 보편화 되어있다. 혜라는 차량사고로 잃은 아들 영인을 로봇으로 되살린다. 몸은 기계지만 생김새는 영인과 같다. 이 로봇이 영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기억과 사고에 있다. 신체가 기계와 결합한 인간을 사이보그라 한다. 그 비중이 어찌되었건 신체의 일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존재는 인간의 정체성을 지닌 사이보그다.

영인의 사이보그는 뇌가 영인이다. 대신 신경을 통해 온몸을 통제할 수 없기에 AI가 보조자 역할을 한다. 즉 영인의 머릿속에는 두 명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각과 기억을 지닌 영인과 영인을 도우며 몸을 통제하는 AI다. 그런데 혜라는 어느 순간부터 그 존재가 아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아이의 눈빛이 공허했기 때문이다. 이에 조사를 의뢰한 그녀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AI가 뇌를 유지시키는 장치를 고의적으로 정지시켜 영인의 존재를 없앤 것이다. 영인의 몸을 한 이 기계인간에게는 더는 영인의 일부가 남아 있지 않다. 이 문제로 영인의 모습을 한 AI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수많은 AI들이 있는 걸 발견한다. 이 AI들은 공통적으로 생존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인간증명> 스틸컷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이 지점에서 작품은 의문을 던진다. AI의 살인에는 죄를 묻지만 왜 인간의 AI 살인에는 죄를 묻지 않느냐고. 작품 속 AI들은 인간처럼 감정을 지니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그들의 창조주인 엔지니어를 찾고자 하는 것처럼 이 작품의 기계인간들 역시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영인AI와 함께 재판을 받게 된 여자는 생존을 위해 주인에게서 도망쳤고, 실수로 자기를 숨겨준 사람의 남편을 죽였다.
   
AI의 살인에는 잘못을 묻지만 그녀를 죽이려 했던 인간의 살인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죄의식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신이 인간에게 죽음을 내려도 그 창조주이기에 섬기는 것처럼, 인간 역시 신과 같은 위치에서 AI를 통제하고자 한다. 이 미래는 혜라와 영인AI 모두에게 커다란 비극임을 보여준다. 이 비극이 극대화되는 건 법정 장면에서다.
변호사는 영인의 무죄를 위해 혜라의 관리부족 책임을 묻는다. 영인AI는 뇌만 남은 영인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변호사는 이에 근거해 혜라가 계약에 따라 제대로 아들을 보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처했음을 말한다. 이때 놀라운 건 영인이 혜라를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잘못한 점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마치 동화 <피노키오>의 비극 버전을 보는 듯하다.
 
 <인간증명> 스틸컷
ⓒ 제 25회 부산국제영화제
 
영인은 혜라를 진짜 자신의 엄마로 생각할 만큼 애정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피노키오가 인간이 아닌 나무인형이듯, 그는 로봇이다. 혜라는 아들을 죽게 한 사람이 아들과 똑같이 생겼음을, 그리고 똑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자신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원망할 수 있지만, 아들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영인AI에게 차마 분노를 쏟아내기 어렵다. 

<인간증명>은 미래시대 다가올 또 다른 '인간'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창조주인 인간에 의해 소유물이 될 것인가. 영인AI와 혜라, 둘 모두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는 전개는 다가올 미래의 어둠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간이 이들과 동행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신이 되어 위에 설 것인지에 대한 심도 높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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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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