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의 딸로 사는 법, 영화 <흔적 없는 삶>

서울문화사 입력 2020. 11. 3. 09:01 수정 2020. 11. 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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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브라 그래닉이 연출한 영화 <흔적 없는 삶>(2018)은 포틀랜드 숲속에서 아빠와 딸이 야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대자연을 만끽하세요’라는 식의 힐링 영화는 아닌 게 분명하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소리와 풍경, 무표정한 인물들의 움직임이 긴장을 자아낸다.

아빠 ‘윌(벤 포스터 분)’은 인간이 머문 흔적을 안 남기려 애쓴다. 원제 ‘Leave no trace(흔적을 남기지 마라)’가 여기서 비롯됐다. 문명의 도구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그들은 주말 캠핑을 나온 게 아니라 불법으로 숲에 사는 것이다.

13살 소녀 ‘톰(토마신 맥켄지 분)’은 아빠를 사랑하지만 가스 버너조차 못 쓰게 하는 건 불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톰의 실수로 공원 관리자들에게 은신처가 노출되면서 이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정부와 봉사자들은 부녀를 사회로 돌려보내려 애쓴다. 임시 거주지를 구해주고 윌에게는 일자리를, 톰에게는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윌은 숲에 있을 때보다 눈에 띄게 불안해한다. 그는 심각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영화는 윌의 장애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아프가니스탄 참전 군인들의 정신적 후유증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데서 짐작만 할 뿐이다.

윌은 다시 숲으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톰은 다르다. 톰은 아직 어리고 세상에 호기심이 있다. 친구도 사귀고 싶다. 하다못해 도시가 아니라 그들 나름 문명에서 도피해온 산속 히피 집단에라도 끼고 싶다. 과연 톰이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까? 설령 윌이 아이를 위해 속세에 남는다 해도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윌이 아이를 끌고 다니는 게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자기 외로움을 덜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다.

톰은 윌보다 어리고 생존 능력도 떨어지지만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다. 이 관계에 더 의지하는 것은 딸인 톰이 아니라 아버지 윌처럼 보인다. 톰도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하다. 윌은 톰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 선생, 세상 전부인 사람이지만 톰이 윌에게 갖는 애착은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극 중 부녀가 처한 상황은 특수하지만 한편으로 가족 관계의 보편성에 대한 메타포를 담고 있다. 한 인간의 성장에서 가족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어째서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는 다른 것을 꿈꾸는가, 자아를 완성하는 여정에서 부모와의 정서적 분리가 필수라면 가장 아프지 않게 이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연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가, 그 이별은 부모와 자녀 각각에게 어떤 여운을 남기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그렇다고 큰맘 먹고 접근해야 하는 어두운 작품은 아니다. 이 차분한 영화가 짙은 몰입을 유발하는 데는 배우의 공이 크다. 특히 딸 역할을 한 토마신 맥켄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그는 파리한 민낯과 무표정한 얼굴로 많은 감정을 담아낸다. 만일 당신이 속세에 지친 사람이라면 벤 포스터가 연기하는 윌에게 더 끌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윌을 사회 부적응자, 비겁한 도망자, 골칫거리로 여기지만 사실 그는 장애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찾아다니는 생존자다. 그 점을 받아들인다면 윌의 숲속 생활을 지켜보는 건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가 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당신은 이 부녀의 미래를 상상하며 행복을 빌게 될 것이다.

글 이숙명(영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하은정 | 사진 : 각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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