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주혁, 부드러운 단단함으로 소리없이 스며들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입력 2021. 1. 9. 11:30 수정 2021. 1. 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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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제'서 영석 역 맡아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드라마 '스타트업' 선보여
올해 이성민과 호흡한 영화 '리멤버' 개봉 예정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남주혁에 대한 개인적 단상 중 잊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한토막 있다.

남주혁이 2018년 영화 '안시성'으로 조인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연으로 활약했을 당시 인터뷰 자리에서 '올해 영화 시상식에서 신인상은 남주혁 배우에게 모두 돌아갈 것 같다'며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 때 남주혁이 정색하며 단호하게 대답한 말은 "감사하지만 신인 남우상에 큰 욕심이 없다. 저보다 잘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이 받으시는 게 맞다. 상에 대한 욕심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답변과 함께 한사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을 향한 칭찬이 이어질까 저어하는 모습이 매우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질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편적으로 정리하자면 자신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원동력으로 배우라는 직업 세계에서 한 계단씩 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였달까.

그리고 그 해 열린 '청룡 영화상'과 '올해의 영화상' 등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 신인상은 아니나다를까 남주혁이 휩쓸다시피 하는 결과로 이어졌었다.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에서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고,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와 '치즈 인더 트랩'(2016)을 거쳐 '역도 요정 김복주'(2016)와 '하백의 신부'(2017)에서 주연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물론 이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임은 분명하다) 모델 출신의 주목 되는 20대 남자 배우에 머물렀다면, 영화 '안시성'을 시작으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2019)로 안정감 넘치는 연기력은 물론이고 상대 연기자들과의 물 흐르는 듯한 호흡을 펼치며 드라마와 영화 구분 없이 또래 연기자들 중 단연 캐스팅 1순위로 급작스럽게 올라섰다.

지난해 가을 선보인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안은영(정유미)와 함께 학교 내 기이한 존재들을 퇴치해가는 한문 교사 홍인표 역할을 맡아 이전에는 본 적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표현했다면,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남주혁은 천재 개발자이자 좌뇌형 인물 남도산 역을 맡아 꿈을 펼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성장해가는 딱 요즘 청춘의 모습을 그려내며 수많은 여성 팬을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달 개봉한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에서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조제(한지민)라는 여인의 마음을 열고 자신 또한 그녀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가는 취업 준비생 영석 역을 맡아 관객들의 잠들어 있던 멜로 세포를 깨워내기도 했다.

영화 '조제' 속 영석은 취업을 눈앞에 둔 취준생에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고단한 청춘이다. 유부녀 여교수와의 하룻밤 일탈도, 자신에게 반해 다가오는 여자 후배도 굳이 마다하지 않는 꽤 세속적인 청춘이지만, 마음은 상상 속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제라는 남다른 여성에게로 향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멜로 영화로 꼽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일본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지만 울기 일보 직전의 얼굴로 자꾸만 조제를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영석과 그를 내치려 하면서도 끝내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조제의 절절한 감정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내내 불안했고 또 한 켠으론 하늘에 닿는 기쁨을 함께 오가게 했던 바로 그 첫사랑의 알싸한 추억을 아낌없이 소환한달까.

"한지민 선배와 '눈이 부시게' 이후 '조제'로 다시 만나게 됐죠. 전작에서는 함께 연기한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조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연기하며 좀 더 깊게 오래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촬영 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좀 더 빨리 깊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전작때도 느꼈지만 한지민 선배는 상대 배우를 위해 카메라 밖에서도 안에서도 100% 연기를 해주는 멋진 선배님이셨어요. 배울 점이 정말 많았어요."

한지민과 남주혁의 '조제'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때 두 사람의 정통 멜로 호흡을 향한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짧고 굵게 호흡한 전작에서의 케미가 좋았을 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는 멜로 장르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제작되는 추세이기 때문. 특히 멜로 장르에 특화된 김종관 감독 연출이니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클수 밖에 없던 터.

"멜르 장르여서인지 인물에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고 하나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김종관 감독님이나 한지민 선배와 소통을 많이 했어요. 영석이 느끼는 감정, 인물들의 대사 한 마디, 공간이 주는 소리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죠. 극 중 조제가 위스키 애호가인데 김종관 감독님이 위스키 종류에 박학다식하셔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 주셨어요."

남주혁은 '조제'의 제작보고회 당시 제작기 영상을 함께 보던 중 예상치 못한 눈물을 흘려 좌중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서로 전?상반된 삶을 살아가던 두 남녀의 깊고도 짧은 사랑과 이별을 그린 영화인 만큼 여전히 주인공 영석에게 여전히 몰입됐던 이유로 여겨졌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 영상을 제작보고회 날 처음 봤어요. 다른 작품을 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제작기 영상을 보다 보니 조제와 영석의 감정을 길고 깊게 보여주더라고요. 당시 생각이 많이 났고 조제와 영석의 끝을 알고 있다 보니 저도 관객의 입장에 몰입이 되더군요. 멜로의 힘이겠죠.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이야기이고 깊게 감정을 교감시키며 만들어 가는 이야기여서 저도 쉽게 몰입이 됐던 것 같아요."

길에서 휠체어에 타고 있던 상태에서 넘어져 꼼짝을 못하고 있는 조제를 발견하고 그녀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준 후 영석이 처음으로 조제에게 마음을 여는 장면은 바로 조제가 끓여 준 번데기 탕을 먹는 장면이다. 이 낯선 커플이 어떻게 연인으로 이어질 것인가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 또한 두 커플을 향한 응원을 시작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번데기 탕을 먹는 장면도 그렇고 영석이가 할머니가 나르는 가구를 뺏다시피 들고 다시 조제의 집을 찾는 장면도 모두 본능적으로 연기했어요. 대본에서 보여지는 상황 안에서 본능적으로 연기했죠. 조제의 집이라는 낯선 환경의 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주방 도구들로 음식을 만드는 걸 보면서 머뭇거리잖아요. 그 때 조제가 '왜 독이라도 탔을까봐'라고 말하는데 그제서야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거죠. 가구 운반 장면에서도 정말 내려놓자마자 큰 한숨이 나올 정도로 먼 길을 걸어왔다는 걸 표현하려고 했고요."

김종관 감독의 '조제'는 상황 설명이나 내러티브적 측면에서 그다지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이들이 왜 사랑에 빠지게 됐는지 그렇게 어려운 사랑을 하게 됐음에도 왜 끝내 각자의 길을 가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모든 등장 인물과 배경, 소품, 사운드, 음악을 통해 그저 이 둘의 삶과 교감을 관객들이 서서히 느껴주기를 바라는 식이다.

"영석의 감정은 연민보다는 사랑이었을 것 같아요. 조제라는 사람은 사람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과 공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모든 지점이 포함돼있죠. 영석은 그녀의 그런 점들에 긍정적 호기심이 일고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 '더 알고 싶다' '더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감정으로 발전학 그러면서 흔히 볼 수 없는 조제라는 사람에게서 설렘과 떨림 그리고 사랑, 책임의 감정을 가져가게 됐죠. 3~4년 전 원작을 본 적은 있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세계 속의 영석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온전히 저만의 방식으로 영석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남주혁이 극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조제를 업고 유원지를 걷다가 관람차에 오르는 장면과 수족관 장면이다. 조제를 사랑하는 영석만의 방식과 사랑에 대한 관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

"'조제' 안에서 영석은 조제를 만나면서 사람과 사랑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지 않았나 싶어요. 한 마디로 책임감 있는 사랑이었죠. 조제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조제가 원하는 바깥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조제가 집을 벗어나 바깥 세상을 접했을 때 그녀의 신발 밑창이 더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녀를 깨끗한 느낌으로 지켜주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영석이 조제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낙엽 떨어진 길을 걷는 장면도 좋아하고요. 수족관 장면 또한 촬영하면서 많은 감정 느꼈어요. 수족관을 바라보고 있는 조제와 영석의 시선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잖아요. 영석은 수족관의 제일 윗부분을,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고 기계들이 있는 물 위의 세상을 보고 있따면 조제는 물 속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걸 보고 있죠. 조제는 '외롭지만 너와 함께 갇혀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고 영석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그 장면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요."

지난해 쉴 틈 없이 일한 남주혁의 작품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소리 없이 강한 성장세를 보여주며 20대 배우들 중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그 스스로의 소감도 궁금했다.

"스스로는 그렇게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장하려고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으로서 최선 다해 연기했을 뿐입니다. 함께 만들어갈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부분에 있어서 이만큼 성장했다'하는 부분은 별로 없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는 스스로도 공간할 수 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택하죠. 캐릭터도 마찬가지고요. 기준점을 딱 잡고 고른다기보다는 제가 끌리는 역할을 고르고 최선을 다 하죠. 대중들과 공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캐릭터인가 하는 지점도 중요해요."

원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마니아 영화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멜로 영화로 꼽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쉽게 부서지기 쉬운 아픈 사랑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안으로 뛰어드는 겁 없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그려내서 일 것이다. 김종관 표 '조제'의 장점 중 하나는 이 모든 정서를 내밀하고 차분하게 담으면서 관객들이 조제와 영석 캐릭터의 삶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게 하는데 있다.

"영석 또한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인물이라는 분석을 해주신 걸 봤는데 불안한 상황에 놓인 친구였죠. 조제만큼은 아니지만 취업 준비생에 누가 손만 내밀어줘도 금새 그 손을 잡아 버리는 선한 친구였죠. 그 동네에 사는 선한 청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환경적으로는 불안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지기 자신의 앞길만 온전히 생각할 수는 없는 친구였어요. 중학교 때 농구 선수로 오래 활동해서 제가 순간 집중력이 꽤 높아요. 연기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촬영하다 보면 현장의 상황이 급격히 변하는 순간들도 있거든요. 그 때마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굳이 내세워보자고 하면 집중을 깊게 한다는 점 정도네요.(웃음)"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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