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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과거를 바꾼다? 2021년의 아름다운 삶을 향한 덕담

이정희 입력 2021. 01. 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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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가을의 마티네>

[이정희 기자]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2021년 벽두부터 던지기에는 좀 오글오글한 질문일까? 아마도 이 질문은 받아든 사람들이 머리에  떠올리는 사랑의 모습에 따라 질문도, 대답도 그 성질이 달라질 것이다. 누군가는 만남의 장소를 떠올릴 지도 모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무슨 얼어죽을 놈의 사랑이라고 넘겨짚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으로 삶의 물길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 걸 경험했던 누군가라면 한번쯤 그 사랑의 시작에 대해 상념에 젖지 않을까. 

<가을의 마티네>는 1999년 약관 23살의 나이에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로맨스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가  원작이다. 2015년부터 마이니치 신문에 연재되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이 소설을 <용의자 x의 헌신>의 니시타시 히로시 감독이 동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함께 영화화했다. 

소설의 제목처럼 주인공 마키노(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와 요코(이시다 유리코 분)의 사랑은 마키노의 연주회가 끝난 곳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됐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첫 번 째 대답이 될 것이다. 

연주회를 마친 마키노는 자신의 대기실에서 공황 상태에 빠져든다. 무려 20주년 독주회, 하지만 연주를 거듭할 수록 그의 이마에 배어나오는 땀방울처럼 그에게는 이젠 날이 갈수록 자신의 기타 연주가 버겁다. 그럼에도 장사진을 이룬 팬들, 그들을 말리는 충복같은 매니저 미타니(사쿠라이 유키 분), 해프닝처럼 마키노의 앨범을 의논하려고 온 소부에, 친구인 요키가 마키노와 마주하게 된다. 
 
 가을의 마티네
ⓒ 찬란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

교감, 아마도 사랑의 시작은 이런 감정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의 궤도를 살아온 두 사람이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지점,  마키노와 요키는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역설적인 문구을 통해 교감한다. 마키노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하는 미타니의 최측근 미타니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두 사람은 눈빛으로 나눈다. 

영화는 내내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는 화두를 되풀이 한다. 마치 역사학자 E.H. 카의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역사에 대한 정의를 뒤집은 듯한 문구이다. 원작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E.H. 카와 다른 말을 한 것일까? 아니 외려, 영화를 보고나면 히라노 게이치로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E.H. 카의 인생 버전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마키노와 유키가 첫 교감을 했던 이야기는 유키의 본가 마당에 있는 너른 바윗돌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유키가 그곳에서 소꼽장난을 즐겨했던 곳, 그래서 좋은 추억으로 기억된 그곳에서 그만 할머니가 머리를 부딪치셔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래서 유키는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다. 왜 마음이 아프냐는 마키노의 매니저 질문에 마키노가 '미래가 과거를 바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좋은 기억이었던 과거가 현재에 벌어진, 즉 '미래'의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아픈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마음아픈 일을 많이 겪는다. 그리고 그 '상처'에 머물러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원작자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가 '천착'해 있는 상처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의해 얼마든지 다시 '각색되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E.H.카가 말한 역사도 결국 현재의 시선에서 과거의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미래를 지향한다는 뜻에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가을의 마티네
ⓒ 찬란
 
영화 속 마키노와 유키는 모두 '상실'을 겪는다. 기타리스트로서 더는 기타를 칠 수 없을 만큼 슬럼프에 빠진 마키노, 그런데 그가 고통 속에서 연주한 20주년 연주회에서 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유키는 그가 유일하게 만족했던 마지막 앵콜 브라암스 곡의 진정성을 알아봐주며 마키노의 마음을 울린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로 돌아간 유키는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의 와중에서 동료를 잃고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런데 그런 유키를 위로해 준 것이 바로 마키노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상실'의 과정을 겪어가며 서로의 진심을 나누고, 사랑을 약속한다. 유키는 파혼을 하고 프랑스 생활을 접고 마키노가 있는 일본으로 온다. 

하지만 운명은 얄궃게도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다. 그로 부터 다시 몇 년의 시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궤도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동안 두 사람은 각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기타를 연주할 수 없었던 마키노가 그를 13살에 발탁하여 가르쳐 준 스승님의 추모 앨범을 계기로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에야 두 사람의 멈췄던 인연의 시계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각자 겪은 개인적인 상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의 사랑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각자 아픔은 겪었지만, 그 아픔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빛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키노가 슬럼프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연주 중 유일하게 스스로 만족한 브라암스에 감명한 유키에게 마음이 그렇게 쉽게 갔을까? 마찬가지로 동료를 잃고 슬픔에 잠긴 유키의 마음을 어떻게든지 달래보려 애쓴 마키노의 정성이 없었다면 유키가 마키노에게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었을까?
 
 가을의 마티네
ⓒ 찬란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시련을 맞이한다. 이별이라는 '현재'는 아마도 그들이 함께 했던 '과거' 조차도 아픔으로 기억되게 했을 것이다. 마치 유키네 집 마당의 바위가 어린 시절 추억을 할머니의 죽음으로 덮었듯이. 심지어 그 이야기를 마키노와 나누었던 그 기억 때문에 더더욱 본가로 돌아간 유키에게 그 바위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 가운데에서도 마키노도, 유키도 서로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상처로만 덮지도 머물러 있지도 않았다. 마키노는 스승의 추모 앨범에서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며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의 그 이야기에 유키가 화답한다. 

영화는 어딘가로 바쁘게 가던 유키가 뒤돌아 고향 마을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거리의 바윗돌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키노에게 화답한 유키가 다시 바라본 그 바윗돌은 이제 어떤 의미였을까? 

2021년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지난 아픔을 접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인 채 놔두면 그대로 아픔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 아픔에 천착하는 대신 그 아픔의 삶을 딛고 거기에 새로운 역사를 부여하는 순간, 아픔은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상실과 상처, 우리를 고통받게 하는 것들이다. 영화는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각자의 삶과 사랑에 용기를 내보라 권한다. 바윗돌 하나에도 오고가는 다른 기억이 얹히듯이 우리가 살아오며 가지게 되는 아픔과 고통들에 대해, 그것들을 '승화'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라 영화는 권한다. 영화 속 마키노가 자신의 슬럼프를 딛고 나아가며 사랑을 되찾듯이, 그리고 유키가 과거에 머무는 대신 성큼 자신의 삶에, 그리고 사랑에 용기를 내보듯이. 그래서 이제 유키가 밝은 표정으로 거리의 바윗돌을 보듯이 우리 역시 우리 삶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재해석할 수 있을 거라, 그래서 '미래가 과거를 만든다'고 영화는 거듭 말한다. <가을의 마티네>란 서정적인 제목 아래 숨겨진 영화 속 의미는 2021년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향한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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