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왜 두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려울까

한겨레 입력 2021. 1. 9. 15:16 수정 2021. 2. 6. 11: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13년 여름,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플랫폼' 줌마네에서 개최하는 '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에 참여했다.

영화를 만들 때 여러 가지 자원들이 필요한데 그 두번째 기회나 자원이 여성들에게 잘 오지 않는다.

워크숍은 이렇게 '여성들은 왜 두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두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든 건 규모가 작은 영화를 만드는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우먼 인 할리우드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 예고편 화면 갈무리

2013년 여름,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플랫폼’ 줌마네에서 개최하는 ‘두번째 영화’를 위한 제작 워크숍에 참여했다. 첫번째 영화를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음 두번째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영화를 만들 때 여러 가지 자원들이 필요한데 그 두번째 기회나 자원이 여성들에게 잘 오지 않는다.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한 평가 절하도 창작자들을 위축시킨다. 워크숍은 이렇게 ‘여성들은 왜 두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워크숍에서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 날을 세우지 않고도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서로의 관점을 배우고, 현장의 많은 업무를 품앗이할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두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두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힘든 건 규모가 작은 영화를 만드는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자본을 많이 필요로 하는 예술 매체이기 때문에, 투자와 지원이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할리우드 역시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에 따르면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첫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로 수많은 상을 수상하는 성취를 거둔다. 그러나 그가 두번째 영화를 만들 때까지 8년의 시간이 걸렸다. 여성 감독들에게는 두번째 기회가 참으로 어렵게 주어진다.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가 영화 제작의 위험 요소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현장에서 여성 감독의 능력은 종종 의심받거나 정당하게 취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델마와 루이스>의 지나 데이비스는 이런 문제들이 다음 세대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바꾸고자 <우먼 인 할리우드>의 제작자로 나섰다. <우먼 인 할리우드>의 원제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This changes everything)이다.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꿈꾸는 다큐멘터리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여성 영화감독, 배우, 제작자들이 현장의 성차별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성평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가 어떻게 대중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먼 인 할리우드>의 포스터.

또한 영화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들이 어떻게 여성 배우들과 시청자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스스로를 긍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영화 속 통계를 보면, 2018년 할리우드 최고 영화 100편의 작가 중에 85%가 남성이었다. 편중된 성별은 작품 속의 인물들 역시 편중되게 만든다.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적 다양성, 성적 지향성 등 미디어의 재현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배우 샌드라 오는 동양인 캐릭터가 나오는 ‘조이 럭 클럽’을 보고 처음으로 미디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토로한다. 미디어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년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책임연구 조혜영)를 보면, 2009년에서 2018년까지 10년 동안 개봉한 상업영화를 연출한 감독 707명 중 여성은 60명으로 8.5%에 불과하다. 최근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전체 산업상의 통계로 보면 여전히 여성 감독의 수는 부족하다.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편견과 걸림돌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영화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다.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이 오면, ‘또 영화를 만드는 여자들의 워크숍’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영화 속 메릴 스트립의 말처럼 더 이상 배제되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감독

▶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