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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훔친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한마디

이현우 입력 2021. 01. 1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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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현우 기자]

"선생님은 실업급여 수령 대상자가 아니에요. 조건 충족이 안되십니다."

한 어르신이 창구에서 노동청 직원을 붙잡고 사정을 호소한다. 결론이 나지 않는 대화가 반복된다. 노동청 직원은 실업급여 수령은 불가하다며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내가 자세히 듣지 못해 영문은 모르지만 노동청 직원은 어르신께 근로복지공단을 소개했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봤다. 솔직히 정말 답답했다. 노동청 직원에게 이입했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상황도 이해됐지만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노동청 직원도 안쓰러웠다. 아무리 설명해도 어르신은 이해하지 못하셨다. 다짜고짜 생활비를 받을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 포스터
ⓒ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독거노인이고 직업은 목수다. 심장질환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일하지 않을 것을 권고받고서 질병수당을 받기 위해 관공서에 찾아간다. 그러나 심장질환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고 그는 수당을 받지 못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한 일련의 과정, 특히 신청하고 증명해야만 하는 과정이 불합리해 보였다.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고 병을 증명해야만 하는 영화의 현실에 분노했다. 게다가 촘촘하게 짜 놓은 수많은 신청 절차와 증빙 절차들을 거쳐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영화 속 복지 시스템에 신물이 났다. 고구마를 한 움큼 입에 가득 물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왜 영화에 이렇게까지 몰입하게 된 걸까.

독거노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 문제는 수당을 받으려면 컴퓨터로 신청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디지털시대'에 블레이크와 같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연필시대' 노인은 절대적 약자다. 대조되는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하는데 옆집 청년이다. 영화에서 청년은 직장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뭔가 직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청년은 컴퓨터를 다룰 줄 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 신발공장의 직원과 연결이 되어 신발을 싼 가격에 수입한다. 그 신발은 영국 시내에서 150파운드에 판매하는 메이커 운동화다. 청년은 싼 가격에 몰래 수입하여 80파운드에 판매한다. 블레이크는 구직활동과 수당 신청을 위해 발을 바쁘게 움직이지만 별 소득이 없다. 하지만 청년은 신발을 팔아 돈을 꽤 벌었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다.

어느 날 이마트에 아내와 식사를 하러 갔다. 아내와 무인주문기로 주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옆에 할아버지 한 분이 무인주문기의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한참을 서성거렸다. 아내는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고 도움을 드릴까 여쭤보았다. 대신 주문해주었고 할아버지는 멋쩍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가셨다. 한낮 기계 앞에서 연륜과 경험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생리대를 훔치는 캐티

캐티는 딸 데이지와 아들 딜런과 함께 산다. 런던에서 단칸방 생활을 하다가 인간다운 삶을 꾸리고자 뉴캐슬의 허름하지만 넓은 집으로 이사 왔다. 하지만 뉴캐슬이라고 삶이 만만치만은 않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고 돈이 없으니 삶은 궁핍해져 갔다. 뉴캐슬에서는 식료품을 지원해주는 복지 시스템이 있었고 혜택을 받기 위해 장소에 찾아간다. 많은 인파로 인해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결국 차례가 되어 식료품을 받게 되었다. 화장지와 기타 생활용품도 받게 되지만 생리대는 없다(이후 캐티는 마트에서 생리대와 면도기를 훔치다 적발되지만 훈방 조치된다). 캐티는 허기짐을 못 이기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통조림을 까서 맨손으로 먹는다. 이내 현실을 자각하고 캐티는 눈물을 쏟아낸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캐티의 손을 맞잡고 거듭 말한다.
It's not your fault.
대한민국의 수많은 다니엘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 제도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국가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와 행정 시스템의 불합리를 고발한다. 영화는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하다.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스스로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복지 제도에서마저 우리는 '복지 혜택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만 한다. 거듭 신청하고 심사받는다. 국가가 마련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떨어지기도' 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2020년 대한민국에도 다니엘 블레이크는 넘쳐난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신분증이 없거나 주소지가 다른 지역으로 되어 있는 홈리스(거리노숙인)는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거리노숙인의 1/3만이 재난지원금을 수령했다. 이뿐이겠는가.

과하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살인자 없이 살해당하는' 구조에 살고 있다.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짜인 구조 속에서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그 자리를 면한다면 누군가는 분명 그 사각지대에 놓인다. 어쩌면 운이 좋거나 젊다는 이유로 그 사각지대로 밀리지 않은 것뿐이다. 우리가 다니엘 블레이크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왜 가난을 증명하고 '사회적 약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은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났을까? 그때마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고 어떻게 판단했을까?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숨을 잃었을까? 영화가 끝나자 그 날 실업급여 창구에서 같은 말만 반복했던 그 어르신이 떠올랐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 @rulerstic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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