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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라인드' 사랑에 관한 몽환적인 잔혹 동화

입력 2021. 01. 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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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동화 속 마법사 같은 흰머리의 여자와 앞 못 보는 미소년의 사랑 이야기. 2007년 당시 신비로운 미장센과 충격적인 결말로 각종 영화제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 ‘블라인드’가 지난 14일 개봉했다. ‘찐 감성 멜로’라는 소문과 팬들의 요청에 제작된 지 15년 만인 2021년 국내에 첫 개봉한 것. 눈 쌓인 북유럽의 한 마을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짐승처럼 난폭해진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 엄마 ‘캐서린(카테리네 베르베케 분)’이 그런 루벤에게 책을 읽어 줄 사람으로 선천성 백색증을 앓고 있는 ‘마리(핼리너 레인)’를 데려온다. 그녀는 첫만남에서부터 난폭한 루벤을 잘 제압하고, 루벤은 그런 마리의 단호한 모습과 『눈의 여왕』을 읽어 주는 기품 있는 목소리에 호기심을 갖는다. “흉측하다”는 말을 들으며, 엄마에게 받은 학대로 얼굴과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마리. 루벤은 그녀가 아주 아름다운 모습일 거라 상상하며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이 처음인 마리 역시 마음을 연다. 그러나 루벤이 수술로 앞이 보이게 되면서 마리는 그의 곁을 떠나고, 그녀를 찾아 헤매던 루벤은 우연히 재회한 그녀에게 변치 않는 마음을 고백하지만 마리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스웨덴의 시린 겨울, 뱀파이어 소녀와 외로운 소년의 슬픈 사랑을 그린 영화 ‘렛 미 인’이 주는 몽환적인 잔혹 동화의 성인 버전 같기도 한 ‘블라인드’는 마지막의 충격적인 결말로 더욱 화제가 됐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안데르센의 책 『눈의 여왕』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로, 마리가 루벤에게 처음 읽어 주는 책도 『눈의 여왕』이다. 동화 속에서 심장과 눈에 거울 조각이 박힌 소년 카이는 주인공 루벤, 그런 소년을 얼음 궁전에 가두는 눈의 여왕은 엄마 캐서린, 그런 카이를 찾아 얼음 궁전을 찾아가는 소녀 게르다는 주인공 마리를 닮았지만, 루벤 덕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은 게르다가 카이 같기도 하다.

벨기에 배우 요런 셀데슬라흐츠와 네덜란드의 배우이자 감독인 핼리너 레인이 오감을 자극하는 연기를 보여 준다. 아마도 어린 시절 유일한 탈출구였을 책 냄새를 맡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마리의 손, 커튼 너머로 서로를 느끼며 그리워하는 장면은 처연하게 아름답고, 빛과 어둠의 이미지로 만들어 내는 긴장감, 소리에 집중하는 시각과 청각의 조화도 놀랍다. 쌓인 눈, 마리에게 안식처가 되는 숲,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의 스케이트.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는 가히 미장센의 천국이라고 해도 부족할 만한 연출을 보여 준다.

사랑은 원래 눈먼 것이었다. 예뻐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 아니던가. 영화는 학대와 상처의 트라우마, 모성애와 애증의 경계, 미의 기준 외에도 보이는 것만 중요한 세상에서 사랑이 가진 의미에 대해 묻는다. 차가운 북유럽의 겨울 풍경 속, 충격적이랄 만큼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을 홀린다. 러닝 타임 102분.

[글 최재민 사진 ㈜컨텐츠썬]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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