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기다림의 소중함을 떠올려 보기

2021. 5. 2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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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원곡과 동명이나, 음악 영화는 아니다.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 준 강하늘, 천우희 두 주인공이 ‘비 오는 12월31일에 만나자’는 약속 아래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 감성 무비다.

형에게 무시 당하며 삼수 생활을 이어 가던 ‘영호’(강하늘)는 오르지 않는 성적과 진로를 찾지 못해 불안한 상황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영호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초등학교 짝사랑 ‘소연’(이설)을 떠올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쓰면서 삶의 활력을 발견한다. 한편 아픈 언니 소연을 간병하며, 엄마와 함께 오래된 책방을 운영하는 ‘소희’(천우희)는 언니 앞으로 도착한 ‘영호’의 편지를 받고 언니 대신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우연히 시작된 편지는 무채색이던 두 사람의 일상을 설렘과 기다림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 하기 없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를 규칙으로 내건 소희에게 영호는 “12월31일 비가 오면 만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4년 만에 스크린 복귀에 나선 배우 강하늘은 보통의 20대 청년 ‘영호’로 완벽하게 분했다.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캐릭터는 늘 보편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인 데다, 거기에 강하늘이 지금까지 보여 준 연기는 기술적인 힘을 보탠다. ‘한공주’, ‘버티고’, ‘곡성’ 등 전작들에서 다소 센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했던 천우희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팍팍한 현실을 이겨 내는 보통의 청춘을 한층 편하고 부드러운 연기로 보여 준다. ‘미생’과 ‘써니’로 강하늘, 천우희와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강소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어찌 보면 2021년의 MZ세대 같은 캐릭터의 ‘수진’ 역으로 출연한다. 마치 영호의 상상 속 친구처럼 늘 주변을 맴돌며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늘 생각지 못한 이벤트를 남기는 수진은 영호의 성장에 있어서 또 다른 자양분이 된다. 그 외에도 소희 엄마를 뮤즈로 부르는 소희의 유일한 친구 ‘북웜(책벌레)’ 역의 강영석, 영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친형을 연기한 임주환과 조용히 영호를 믿어 주는 아버지 이양희 등 성장 영화에서 늘 주인공에게 조력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의 서사도 감독은 아무렇게나 넘기지 않고 꼼꼼하게 다뤄 준다.

어린 시절 첫사랑이나 오랜 기간 기다려 온 비 오는 날 만남은 자칫 올드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 재수 학원과 헌책방, 손 편지 같은 소재 역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산에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을 그려 쉽게 잃어버릴 수 없게 만드는 영호의 공방, 가요 프로그램에서 몇 주간 1위를 했던 곡이라는 이유로 중고 음반을 돈을 더 얹어서 사는 헌책방 소희의 에피소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것들을 귀히 여길 줄 아는 둘의 성정을 보여 준다.

분명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지만 손 편지를 기다리고, 비 오는 12월31일에 만나자는 손에 안 잡히는 약속을 하는 둘의 모습은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오히려 진정한 소통에 대한 의미를 상기시킨다. 때론 유튜브 영상이나 메신저보다는 손 글씨 한 줄에 크게 위로받는 것이 사람이니까.

비단 청춘이 아니라 해도 불안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관계와 기다림이 주는 설렘으로 채색해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장면이 많다. 러닝 타임 114분.

[글 최재민 사진 ㈜키다리이엔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9호 (21.05.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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