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기다림의 소중함을 떠올려 보기
부활의 원곡과 동명이나, 음악 영화는 아니다.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 준 강하늘, 천우희 두 주인공이 ‘비 오는 12월31일에 만나자’는 약속 아래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 감성 무비다.
4년 만에 스크린 복귀에 나선 배우 강하늘은 보통의 20대 청년 ‘영호’로 완벽하게 분했다.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캐릭터는 늘 보편적으로 다가오는 캐릭터인 데다, 거기에 강하늘이 지금까지 보여 준 연기는 기술적인 힘을 보탠다. ‘한공주’, ‘버티고’, ‘곡성’ 등 전작들에서 다소 센 느낌의 캐릭터를 연기했던 천우희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팍팍한 현실을 이겨 내는 보통의 청춘을 한층 편하고 부드러운 연기로 보여 준다. ‘미생’과 ‘써니’로 강하늘, 천우희와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강소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거침없는, 어찌 보면 2021년의 MZ세대 같은 캐릭터의 ‘수진’ 역으로 출연한다. 마치 영호의 상상 속 친구처럼 늘 주변을 맴돌며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늘 생각지 못한 이벤트를 남기는 수진은 영호의 성장에 있어서 또 다른 자양분이 된다. 그 외에도 소희 엄마를 뮤즈로 부르는 소희의 유일한 친구 ‘북웜(책벌레)’ 역의 강영석, 영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친형을 연기한 임주환과 조용히 영호를 믿어 주는 아버지 이양희 등 성장 영화에서 늘 주인공에게 조력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의 서사도 감독은 아무렇게나 넘기지 않고 꼼꼼하게 다뤄 준다.
어린 시절 첫사랑이나 오랜 기간 기다려 온 비 오는 날 만남은 자칫 올드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설정. 재수 학원과 헌책방, 손 편지 같은 소재 역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산에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그림을 그려 쉽게 잃어버릴 수 없게 만드는 영호의 공방, 가요 프로그램에서 몇 주간 1위를 했던 곡이라는 이유로 중고 음반을 돈을 더 얹어서 사는 헌책방 소희의 에피소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 것들을 귀히 여길 줄 아는 둘의 성정을 보여 준다.
분명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지만 손 편지를 기다리고, 비 오는 12월31일에 만나자는 손에 안 잡히는 약속을 하는 둘의 모습은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오히려 진정한 소통에 대한 의미를 상기시킨다. 때론 유튜브 영상이나 메신저보다는 손 글씨 한 줄에 크게 위로받는 것이 사람이니까.
비단 청춘이 아니라 해도 불안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관계와 기다림이 주는 설렘으로 채색해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장면이 많다. 러닝 타임 114분.
[글 최재민 사진 ㈜키다리이엔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9호 (21.05.1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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