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이라는 판타지 위에 지어 올린 남초지대

한겨레 입력 2022. 5. 21. 19:06 수정 2022. 5. 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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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 범죄도시2
2017년 정점 찍은 남성영화들
여성 이용해 남성 과대재현해
여성·조선족 사라진 '범죄도시2'
남성들만의 '힘의 위계' 드러내
영화 <범죄도시2>.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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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어렸을 때 집 마당에 매화나무가 한그루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이른 봄, 그 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평소라면 하나의 꽃봉오리가 맺힐 자리에 두개, 세개씩 꽃봉오리가 잡혔다. 그렇게 과하게 생명을 발하는 나무를 보고 외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곧 죽겠구나.” 매화나무는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했다. 자신의 끝을 알고 생의 마지막을 불태우며 흐드러졌던 꽃매화의 이야기는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2017년, 나는 한국의 남성영화 시장이 마지막 해를 사는 매화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매화와 달리 곱지도 애처롭지도 않았지만.

1편과 달라진 세가지

2017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상위권에는 <택시운전사> <공조> <범죄도시> <군함도> <청년경찰> <남한산성> 등이 이름을 올렸다. 전부 남성영화였다. 이해에 박스오피스 15위권 안에 든 영화 중 여성이 서사의 주요 동기부여자로 등장한 건 <아이 캔 스피크> 단 한편이었다. 같은 해 개봉했던 <브이아이피>는 여자를 오직 시체로만 그리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상징적으로 사라지고 남성이 과대재현’되는 경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내내 지속되었지만, 2017년은 확실히 과했다. 특히 2015년 이후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던 터라 이런 한계들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한편으로 조선족(중국동포) 재현 역시 문제가 되었다. 오직 ‘한국 남성’만을 역사의 주인공이자 영웅으로 다시 세우려고 할 때, 조선족은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서 손쉽게 소환됐다. <황해>(2010) 이후 계속된 ‘조선족=개장수’의 이미지는 2017년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작품은 <청년경찰>이었는데, 이 작품에서 대림동은 조선족이 남한 여자의 배를 갈라 난자를 갈취하는 야만의 공간으로 그려졌다. 대림동 중국동포들은 항의 끝에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화해권고 결정이 나왔다. 이 결정에는 제작사가 공식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한국에서 소수자 재현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젠더화된 남성영화들의 만개와 함께 한국 상업영화가 빈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조금씩 다른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바람은 <벌새> <우리집> <메기> 등과 함께 작은 영화에서부터 불기 시작했고, 상업영화에서도 <완벽한 타인> <극한직업> <엑시트> <82년생 김지영> 등이 개봉해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어떤 뚜렷한 전환의 경향성을 확인하기도 전에 영화 산업의 위기는 다른 곳에서 닥쳐왔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 2년이 흘렀다. 드디어 암흑기가 끝난 것일까? 최근 완화된 방역지침과 함께 극장이 깨어나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 2>가 표면의 얼음을 깼다면, 그 흥행을 <범죄도시2>가 이어가려는 참이다. 극장가가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개봉 첫날 서둘러 영화를 보러 간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1편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찾아온 2편에서 여성 재현과 조선족 재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시간은 <범죄도시>의 가리봉동 사건으로부터 4년 후. 그 유명한 장첸(윤계상)을 맨주먹으로 때려잡았던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더 악랄하고 의뭉스럽게 움직이는 연쇄살인마 강해상(손석구)과 한판승부를 벌이려는 참이다. 줄거리는 딱히 설명할 게 없다. <범죄도시2>의 재미는 온전히 마석도-강해상 캐릭터의 매력과 시원한(혹은 무자비한) 액션에 놓여 있다. 영화는 전편과 세가지 점에서 달라졌다. 첫째, 스토리가 훨씬 단순해졌다. 둘째, 조선족 남성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남한 남성의 유순한 ‘부하’가 되었다. 셋째, 일종의 ‘펜스룰’이 작동한다. 남자들은 여자들과 동석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 여성에 대한 상상력이 빈약한 남성영화에서 여자를 그려봐야 문제만 일으키는(욕만 먹는) 상황에서 그냥 안전하게 배제하면서 여성은 물리적으로도 사라졌다.

‘여자 없는 세계’ 속 남성영화

그런데 이 기이할 정도로 ‘여자가 없는 세계’가 묘하게 설득력을 가진다. 마동석 때문이다. ‘팀고릴라’와 함께 ‘마동석 장르’를 구축해온 그는 2021년 단편영화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동석 장르의 에센스를 선보였다. 이 영화의 홍보문구는 “7분 안에 24킬?”이었다. 그를 죽이기 위해 수십명의 흉포한 남자들이 달려들지만 그는 주먹 하나로 모두를 제압한다. 마동석은 한국 영화에 없었던 남성상과 함께 새로운 ‘남초지대’를 선보이고 있다. 과거의 남성연대는 여자라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결속했다면, 이 남초지대는 근육질과 주먹질이 만들어내는 남성 신체의 매혹과 순수하게 힘으로 결정되는 위계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모두의 (사랑스러운!) ‘형님’이며, 정형화된 여성 신체가 환기했던 취약성에 대한 두려움은 형님의 단단한 어깨 아래에서 깨끗이 말소된다. 그러니 마동석이라는 판타지 위에 세워진 ‘범죄도시=남초지대’가 ‘여자라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마동석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이 부상한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라는 케이(K)-자부심이다. 그는 한국사라는 과거를 짊어진 기존의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이해받아야 할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다. 그렇게 한국적 특수성을 탈각한 채로 <범죄도시2>는 보편영화가 되었다. 바다 건너 베트남을 뒤집고 다니는 마석도와 전일만(최귀화)의 자리에 미국말을 쓰는 백인 남자 둘을 놓아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베트남은 딱 그 수준에서 타자화된다. 그곳은 어디여도 상관없다. ‘한국이라는 선진국’의 언어와 룰이 적용되지 않는 타지로서 기능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2022년, 마동석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확고히 자리잡을 것이다. 그 아이콘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좀 더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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