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家 해체"..'브로커' 결말 비화 [무비노트]

이기은 기자 2022. 6. 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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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포토

** 간접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수 아이유, 배우 이지은의 특색과 인장이 미묘하게 섞였다. 명불허전 톱 스타, 올해 막 30살이 된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수성과 가까이 자리할, 불안하고 흔들리는 청춘의 얼굴을 연기한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진출작 ‘브로커’의 주인공 소영(이지은)은 어린 나이에 홀로 낳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 가여운 청춘과 아기에게 능청스럽게 접근한 브로커들도 있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제작 영화사 집)가 오늘(18일) 기준 국내 박스오피스 관객 100만 명을 넘기며 순항 중이다. 작품은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렸으며, 칸 황금종려상 수상 이력이 있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신작으로 크랭크인부터 높은 화제성을 담보했다.

국내 시네필 사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팬덤은 상당하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환상의 빛’, ‘어느 가족’ 등 숱한 명작을 연 단위로 내놓는 그는 성실한 다작 감독으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기타노 다케시, 구로사와 기요시 등과 함께 거장으로 손 꼽힌다.

감독은 당초 가족의 얼굴, 습관, 관계, 습성, 감정을 클로즈업 하는데 골몰했다. 가령 이 수 십 편의 필모그래피가 ‘가족을 제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개인전’라고 가정하자. 이때 ‘브로커’의 작품 제목은 ‘가족-챕터7’ 쯤 되리라. 아이, 아버지, 어머니, 그들의 관계성을 이야기를 하는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연작 시리즈 중 튀지 않고 어우러진 하나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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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각지대, 방황하는 사람들

영리한 톱스타 아이유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컬래버레이션은 그 자체로 ‘윈윈(win win)’이었다. 이지은은 이 시나리오를 받아 든 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앞서 그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오갈 데 없는 소위 ‘스트릿 걸’로 열연했다. 그는 단연코 ‘브로커’의 유사한 휴머니즘 플롯에 선뜻 마음을 내줬을 테다.

이지은의 자신감은 들어맞았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쓸쓸한 눈빛과 표정 연기가 스크린 곳곳을 아련하게 장식했다. 극 중 소영은 성매매를 행한 중년 남성의 아이를 가졌고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다. 빨간 줄이 그어진 젊은 여자의 미래는 없다. 암흑의 터널에서 숨 쉴 뿐인 이 청춘의 인생을 지도 편달하거나 지원해 줄 어른도 없었다.

브로커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는 극 초반 기계적으로 아이를 내다 파는 하이에나 브로커로 그려진다. 하지만 중·후반부에 들어서면 실상 불우한 환경에서 하릴없이 떠밀리듯 생존해왔음이 드러난다.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범법을 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 상정됐고,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이들의 형편 없는 현재를 야기했다. 그리고 브로커 상현과 동수의 생활 습관, 트라우마 양상은 소영의 현주소와 합치된다.

굳이 연령대를 나누자면 상현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정잡배이자 기성세대다. 30대의 동수는 그런 상현을 답습할 위기이며 개 중 소영은 가장 젊다. 소영에겐 어쩌면 상현의 망가진 삶을 근절하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브로커’의 결말은 예상 가능할 만큼의 명징한 휴머니즘으로 완성됐다. 상현은 후세대를 위해 소영과 상현을 구하는 ‘어떤 행위’를 한다. 자신의 버려진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자신과 닮은 소영을 만났고 비로소 악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상현의 이 마지막 중대한 결심이 영화의 절정을 뒤덮고 소영은 상현이 열어 준 새장 문 밖으로 날아가는 파랑새와도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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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관계 아니라도 괜찮아…가부장 사회의 해체

영화의 본질을 드러내는 어떤 플롯을 살펴보자. 상현, 동수, 소영, 보육원에서 입양 받지 못해 상현에게 따라 붙은 어린이 해진(임승수) , 소영이 낳은 아기가 짬을 내 놀이공원에서 한여름의 나들이를 즐긴다. 꿈 같고 덧없는.

감독은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각지대의 인물들이 타인의 선의에 의해 구원 받는 과정을 포근하고 팬시(fancy)한 필치로 스케치해냈다. 영상은 내내 상아 빛깔을 띠고, 관람차 안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논의하는 청춘남녀 동수와 소영의 심각한 표정은 한 줄기 남아있을 것만 같은 희망의 오마주로도 다가선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릴없이 기대며 부족한 인간이 기적처럼 서로를 구하는 구원 판타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혹독한 현실의 하이퍼리얼리즘을 택하기보다, 새롭게 뭉친 이 식구(食口)들을 향한 행복한 공상 한 조각을 펼쳐냈다.

가족의 진짜 정의는 무엇일까. 생판 모르는 타인끼리 한 공간에서 끼니를 해결하면 되는 것일까. 한국 사회의 통상적 가족 개념은 피로 맺어진 혈연 관계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인 가구가 급증하며 결혼, 출산, 육아 제도가 끊임없이 수정·변화하고 있다. 이 시점 ‘브로커’는 국내 2030대 여성 관객들에겐 적잖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혈연에서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가능하다는 신(新) 사회적 제안. 즉 기존 관습의 해체다.

한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왔고 현재 중년 남성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개인적 세계관을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최근 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족 문화·제도적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글로벌 트렌드다. 그 경향성이 일본 거장의 손길을 통해 '브로커'에 유혹적으로 당도한 지금, 관객들은 어떤 삶의 지도를 그려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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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영화 포스터, 스틸컷]

결말 | 브로커 |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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